선라이즈 (기업)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선라이즈는 1972년 무시 프로덕션에서 독립한 스태프들이 설립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이다. 자본 부족으로 도호쿠 신샤의 투자를 받아 창영사를 설립, 기획과 제작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으며, 이후 일본 선라이즈로 상호를 변경하고 자체 제작 애니메이션을 시작했다. 1994년 반다이에 인수되어 반다이 남코 그룹 산하가 되었으며, 2022년 반다이남코 필름 웍스로 통합되었다. 주요 제작 작품으로는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러브 라이브!》 시리즈 등이 있으며, OVA 및 극장판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참여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반다이 남코 필름웍스 - 반다이 비주얼
반다이 비주얼은 1982년 반다이에서 시작된 영상 제작 및 배급 회사로,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제작, 판매하며 이름을 알렸으나, 2018년 반다이 남코 아츠로 재편, 2022년에는 선라이즈와 통합되어 반다이 남코 필름워크스가 되었지만, 현재도 '반다이 비주얼' 브랜드는 유지되고 있다. - 반다이 남코 필름웍스 - 반다이 남코 픽처스
반다이 남코 픽처스는 2015년 선라이즈에서 분리되어 키즈, 패밀리층 대상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일본 회사로, 완구 사업 연계 강화 전략의 일환으로 설립되었으며, 《은혼》, 《TIGER & BUNNY》 등의 이관작과 자체 제작 작품을 만들고 오사카, 이와키 스튜디오 설립을 통해 제작 역량을 넓혔다. - 선라이즈 - 마이 히메
마이 히메는 12명의 히메 소녀들이 차일드를 소환하여 오펀과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으로, 후우카 학원을 배경으로 각자의 엘리먼트와 차일드를 사용하여 전투를 벌인다. - 선라이즈 - 샌드 랜드
토리야마 아키라의 만화 "샌드 랜드"는 물 부족에 시달리는 사막 세계에서 악마 왕자 벨제부브, 인간 보안관 라오, 도둑 시프가 환상의 샘을 찾아 국왕에 맞서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로, 다양한 미디어 믹스로 전개되었다. - 반다이 남코 그룹 - 란티스
란티스는 1999년 반다이 뮤직 엔터테인먼트 구조조정 후 해고된 직원들이 설립하여 애니메이션 및 게임 관련 음악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해 온 일본의 음악 레이블이자 반다이 남코 뮤직 라이브의 레이블이며, 2018년 반다이 비주얼과 합병하여 반다이 남코 아츠 발족과 함께 해산되었으나 레이블명은 존속하고 있다. - 반다이 남코 그룹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는 1955년 나카무라 제작소로 시작해 팩맨 등으로 성장한 일본 게임 회사로, 반다이 남코 그룹의 일원이며 가정용/아케이드 게임 개발 및 IP 사업을 하고 철권, 소울칼리버, 에이스 컴뱃 등의 인기 시리즈를 보유하고 있다.
선라이즈 (기업) - [회사]에 관한 문서 | |
---|---|
회사 정보 | |
회사명 | 선라이즈 |
영문 회사명 | SUNRISE |
영문 회사명 (전체) | SUNRISE INC. |
종류 | 브랜드 |
설립 | 1972년 9월 (유한회사 선라이즈 스튜디오) |
업종 | 정보·통신업 |
사업 내용 | 텔레비전 시리즈, 비디오, 극장 영화의 기획·제작 CG, 게임 등 캐릭터 비즈니스 전반 |
소유자 | 반다이 남코 필름 웍스 |
웹사이트 | 선라이즈 공식 웹사이트 |
본사 우편 번호 | 167-0051 |
본사 위치 | 도쿄도스기나미구오기쿠보 4초메 30번 16호 후지사와 빌딩 화이트베이스 |
본사 좌표 | 35°42′14.2″N 139°37′25.8″E |
직원 수 | 293명 (2021년 4월 1일 현재) |
![]() | |
![]() |
2. 역사
1972년, 무시 프로덕션에서 독립한 유지(有志)들이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인 '''주식회사 창영사'''를 설립했다.[2] 같은 해 9월, 창영사의 제작 현장으로서 '''유한회사 선라이즈 스튜디오'''가 설립되었다.[2]
무시 프로의 제작·영업 부문에 소속되어 있던 기시모토 요시노리, 이토 마사노리, 야마우라 에이지, 시부에 야스오, 이와사키 마사미, 누모토 기요미, 요네야마 야스히코 등 7명이[3] 설립 멤버로 참여했다. 이들은 자금이 부족하여 무시 프로 작품에서 음향을 담당했던 도호쿠 신샤에 출자를 의뢰했고,[4] 선라이즈 창업자와 도호쿠 신샤의 공동 출자로 주식회사 창영사가 설립되었다. 창영사는 기획과 영업을, 선라이즈 스튜디오는 애니메이션 실제 제작을 담당하는 체제였다.[5] 초기에는 영업·제작 스태프가 양사에 동시에 재적했지만, 창영사가 도호쿠 신샤의 자회사였기 때문에 이 시기 제작된 작품의 저작권 표시는 "©도호쿠 신샤"였다.
1972년은 무시 프로(구 무시 프로)와 그 관련·자회사의 경영난, 노동 쟁의가 표면화되던 시기였다. 이는 "애니메이터가 아니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해질 정도로 애니메이터 편중의 작품 제작을 우선시하는 기업 풍토 때문이었다.
창업 멤버들은 무시 프로가 도산 직전의 상황이 되기 전에 독립했지만, 회사의 문제점을 내부에서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이 경험은 선라이즈 스튜디오 경영에 큰 교훈이 되어, "크리에이터가 경영진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라는 경영 정책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6] 창업 이후 선라이즈는 자사 스튜디오를 보유하면서도 제작 진행 관리 업무 이외의 실제 제작 작업은 거의 외주 스태프에게 맡겼다. 5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기업임에도 선라이즈에만 몸담아온 정사원으로 감독을 맡은 인물은 없다.[7] 이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필요한 스태프나 전문직 대부분을 자사에서 정규 고용하여 인건비 증가, 사내 포스트 문제 등으로 노동 쟁의를 겪고 파탄한 구 무시 프로의 경험을 반성한 결과였다. 선라이즈에서 히트작을 통해 이름을 알린 토미노 요시유키, 타카하시 료스케 등의 감독이나, 시오야마 키오, 야스히코 요시카즈, 키무라 타카히로 등의 유명 애니메이터도 외주 스태프로서 작품 단위의 기획·제작에만 참여했다.
창업 초기 경영진은 애니메이션의 작품성뿐만 아니라, 비용 절감과 각종 판권 수입 등을 통해 종합적인 채산 확보와 건전 경영 유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장난감 상품 기획과의 제휴를 애니메이션 기획의 기점과 주축으로 삼는 시스템을 채택한 것도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8] 이는 "자금이 없는 약소 프로덕션이기에 인건비를 부담할 수 없다"[9], 만화 원작의 저작권(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얻기 위해 필요한 예산을 마련할 수 없다는 자금 관련 사정 때문이었다. 한편, 출판물을 원작으로 한 작품의 경우, 애니메이션 잡지가 기사를 게재할 때 저작권자의 의향에 따라 지면의 소재로 사용하고 싶은 영상의 사용 허가가 나지 않거나 페이지 수 제한이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선라이즈 작품에서 오리지널 기획이 많은 것은 1980년대를 중심으로 애니메이션 잡지에서 메인으로 다루어지는 요인이 되었다.[10]
2. 1. 창업 (1972년 ~ 1976년)
1972년 경영난에 빠진 무시 프로덕션에서 독립한 키시모토 요시이사오, 이토 아키노리, 야마우라 에이지 등 7명이 중심이 되어 '유한회사 선라이즈 스튜디오'를 창업했다.[257] 초기에는 자본 부족으로 도호쿠 신샤의 투자를 받아[258] '주식회사 소에이샤'를 설립했다.[259] 소에이샤는 기획과 영업을, 선라이즈 스튜디오는 제작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무시 프로덕션의 경영 실패를 교훈 삼아, 선라이즈는 '크리에이터가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확립했다.[260] 제작 작업은 거의 대부분 외주 스태프가 맡았으며, 선라이즈에 정규직으로 감독을 지낸 인물은 없다.[261] 토미노 요시유키, 타카하시 료스케 등 유명 감독들도 외주 스태프였다.
창업 초기 경영진은 애니메이션의 작품성뿐만 아니라, 외주 활용을 통한 비용 절감, 판권 수입 등을 통해 건전한 경영 유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완구 회사와의 협력을 통해 애니메이션 기획을 진행하고, 판권 수입을 확보했다.[262] 이는 자금 부족과 저작권 확보의 어려움 등 초기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었다.[263]
2. 2. 일본 선라이즈 시대 (1976년 ~ 1987년)
1976년 11월, 도호쿠 신샤 산하에서 독립하여 '''주식회사 일본 선라이즈'''로 상호를 변경했다.[265] 독립 후에는 주로 토에이와 츠부라야 프로덕션의 애니메이션 제작을 하청받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선라이즈 이이즈카 마사오는 "용자 라이딘으로 얻은 이익은 모두 도호쿠 신사가 가져가 급여가 오르지 않았고 소에이샤에 많은 불만이 쌓여 있었다"고 회고한다.[265]1977년, 선라이즈는 첫 자체 제작 애니메이션인 《무적초인 점보트3》을 제작하였다. 1979년에는 《기동전사 건담》을 제작하여 리얼로봇 붐을 일으켰다.
1981년, 초대 사장 키시모토 요시이사오가 40대의 나이로 사망했다. 격무 탓에 몸이 망가져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266] 키시모토의 사망 후, 이토 아키노리가 2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1985년, OVA 시장에 진출했다. 완전 오리지널 기획은 적었고, 《장갑기병 보톰즈》와 같이 TV 시리즈에서 인기를 얻은 작품의 속편이나 《장갑기병 메로우링크》처럼 그 연장선상에 있는 기획을 제작하는 기본 방침을 취하였다.
2. 3. 주식회사 선라이즈 시대 (1987년 ~ 1994년)
1987년 6월, '''주식회사 선라이즈'''로 회사 이름을 변경하고, 야마우라 에이지가 3대 사장이 되었다. 사장 취임에 따라 제작 노선을 전환하여, 미스터 아짓코, 시티 헌터 등 만화 원작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이 작품들에는 유명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의 패러디를 도입하여 이후 선라이즈 애니메이션의 특징 중 하나가 되었다.당시는 건담으로 대표되는 리얼 로봇 애니메이션 붐이 가라앉고 있었고, 선라이즈도 같은 해 방송된 《기갑전기 드라고나》를 마지막으로 리얼 로봇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잠시 벗어났다. 완구 업체와 협력한 오리지널 기획에서는 《마신영웅전 와타루(한국명: 슈퍼 씽씽캅)》를 시작으로 어린이가 로봇에 타거나 로봇과 우정을 쌓으며 적을 물리치는 로봇 애니메이션을 제작했고, 《개전 사무라이 트루퍼》의 성공으로 미소년들이 특수 갑옷을 입는 작품도 선보였다.
1990년대 초반에는 건담보다 낮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용자 시리즈》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2. 4. 반다이 남코 그룹 산하 (1994년 ~ 현재)
1994년 4월 1일, 반다이에 인수되어 반다이 그룹의 자회사가 되었다.[267] 이에 따라 경영진도 쇄신되었고, 이후에는 마츠모토 사토루와 같이 주로 반다이에서 파견된 인물들이 경영진을 맡게 되었다.카와구치 카츠미에 따르면, 반다이 그룹 내부에서는 출자한 작품의 상품화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건담' 시리즈를 지표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16] 이 시리즈와 비슷한 수준의 매출이 없으면 작품으로서 성공했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건담에 편중되는 경향이 나타났다.[267] 선라이즈 작품뿐만 아니라 "로봇 애니메이션은 건담에 의해 도태된다"는 시각도 있었다.[268] 이러한 이유로 《용자 시리즈》가 종료된 1990년대 말 이후, 선라이즈는 소년층, 저연령층을 위한 로봇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했다.[17]
반다이 그룹(반다이남코 그룹)은 판권, 캐릭터 관련 비즈니스에서 오랫동안 업계 최대 기업으로서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반대로 이 회사가 관여하는 작품에서는 판권이나 제작 체제 전반의 관리가 매우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선라이즈도 반다이 그룹에 들어간 후 예외는 아니어서, 판권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작품 출연 성우와 원작자, 감독 등의 미디어 출연에 대해서도 관리가 더욱 강화, 철저하게 되었다.
# | 성명 | 재임 기간 | 비고 |
---|---|---|---|
4 | 요시이 타카유키 | 1994년 - 2008년 4월 25일 | 요시이 카나코의 아버지 |
5 | 우치다 켄지 | 2008년 4월 25일 - 2014년 4월 1일 | |
6 | 미야카와 야스오 | 2014년 4월 1일 - 2019년 4월 1일 | 반다이 출신 |
7 | 아사누마 마코토 | 2019년 4월 1일 - 2022년 4월 1일 |
2010년대에는 러브 라이브!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이전보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다.
3. 제작 작품
2015년 4월 1일, 어린이 및 가족 대상 작품 등의 일부 제작 부문을 분사하여 주식회사 반다이남코 픽처스(BNP)를 설립했다.[18] 사장은 선라이즈 사장인 미야카와 야스오가 겸임했다. 이후 선라이즈는 하이 타겟(비교적 높은 연령대의 시청자)을 위한 작품을 중심으로 제작하는 체제로 특화되었다.
2016년 9월에는 선라이즈 내부에서 독자적으로 시작한 비 영상계 오리지널 작품(주로 소설)을 제공하는 웹사이트 "야타테 문고"를 개설했다.
2018년에는 CG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인 서브리메이션과 자본 제휴를 체결했다.[18] 같은 해 11월 20일, XEBEC의 영상 제작 사업을 양수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촬영 부문, 네리마 스튜디오, 마감 부문 및 과거 작품의 저작권을 제외한 애니메이션 작화, 제작 관리 부문을 양수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이를 위해 2019년 3월 1일부로 신회사 '''주식회사 SUNRISE BEYOND'''(선라이즈 비욘드)를 설립하고, 4월 1일부로 해당 사업을 이관했다.[19][20][21][22]
2019년 4월 1일, 미야카와 야스오가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전무 이사였던 아사누마 마코토가 사장으로 취임했다.[23] 같은 날, 선라이즈 음악 출판의 사명을 "주식회사 선라이즈 뮤직"으로 변경했다.
3. 1. TV 애니메이션
1972년 도호쿠 신샤의 하청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을 시작한 이래, 선라이즈는 다양한 TV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왔다. 초기에는 창영사 명의로 하자돈(1972), 제로 테스터(1973) 등을 제작했다.[2]
1975년에는 용자 라이딘을 제작하며 NET, 토호쿠 신샤와 협력했다. 같은 해 라 세느의 별, 엉뚱 대모험 쿰쿰도 제작했다. 1976년에는 초전자기 로보 콤바트라 V를 통해 NET→TV 아사히, 토에이, 토에이 에이전시와 공동 제작을 시작했으며, 공룡 탐험대 본 프리, 로봇 꼬마 비튼도 선보였다.
1977년 초전자기 머신 볼테스 V를 통해 TV 아사히, 토에이, 토에이 에이전시와의 협력을 이어갔으며, 무적초인 점보트 3을 제작했다. 1978년에는 마법소녀 치클, 투장 다이모스, 무적강인 다이탄 3을 제작했다.
1979년은 선라이즈에 있어 중요한 해였다. 사이보그 009 (제2작)을 TV 아사히, 토에이와 함께 제작했으며, 미래 로봇 달타니어스는 도쿄 12 채널, 토에이, 토에이 에이전시와 협력했다. 또한 더☆울트라맨을 츠부라야 프로덕션, TBS와 함께 제작했으며, 기동전사 건담을 통해 건담 시리즈의 첫 발을 내딛었다. 같은 해 과학 모험대 탄서 5도 제작되었다.
1980년대에는 무적 로봇 트라이더 G7(1980), 전설거신 이데온(1980), 최강 로봇 다이오쟈(1981), 태양의 송곳니 다그람(1981), 전투 메카 자붕글(1982), 성전사 던바인(1983), 장갑기병 보톰즈(1983), 은하표류 바이팜(1983), 중전기 엘가임(1984), 거신 고르그(1984), 기갑계 가리안(1984), 초력 로봇 갈라트(1984) 등 다양한 작품을 제작했다.
1985년에는 기동전사 Z 건담을 통해 건담 시리즈를 이어갔으며, 더티 페어와 푸른 유성 SPT 레이즈너를 제작했다. 1986년에는 기동전사 건담 ZZ로 건담 시리즈를 계속했으며, 1987년에는 기갑전기 드래구너, 시티헌터, 미스터 아짓코를 제작했다.
1987년 6월, 주식회사 선라이즈로 상호를 변경하고[2], 미스터 아짓코, 시티헌터와 같이 만화 원작 작품 제작을 늘렸다.[14] 또한, 기갑전기 드래고나를 마지막으로 리얼 로봇 계열 작품에서 벗어나, 마신영웅전 와타루를 통해 어린이 대상 로봇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1988년에는 시티헌터 2, 마신영웅전 와타루, 요로이전 사무라이 트루퍼를 제작했으며, 1989년에는 수신 라이거, 마동왕 그랑조트,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시티헌터 3을 선보였다.
1990년대 전반에는 용자 시리즈가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등 오리지널 작품도 강세를 보였다. 1994년에는 반다이의 자본 참여를 받아 그룹 기업이 되었다.
선라이즈는 총 12개의 스튜디오를 통해 작품을 제작했으며,[27] 2015년 반다이남코 픽처스 설립 이후 일부 스튜디오는 이관되었다.
3. 1. 1. 시리즈 작품
3. 1. 2. 연대별 작품
시작 연도 | 제목 | 비고 |
---|---|---|
1972년 | 하자돈 | 제작: 창영사, 후지 TV, 공동 제작: 와코 프로덕션 |
1973년 | 제로 테스터 | 제작: 칸사이 TV, 창영사 |
1975년 | 용자 라이딘 | 제작: NET, 토호쿠 신샤 |
라 세느의 별 | 제작: 후지 TV, 공동 제작: 유니맥스 | |
엉뚱 대모험 쿰쿰 | 제작: 마이니치 방송, ITC 재팬 | |
1976년 | 초전자기 로보 콤바트라 V | 제작: NET→TV 아사히, 토에이, 토에이 에이전시, 공동 제작: 토호쿠 신샤 |
공룡 탐험대 본 프리 | 제작: NET, 츠부라야 프로덕션, 공동 제작: 창영사, 일본 현대 기획 | |
로봇 꼬마 비튼 | 제작: 토호쿠 신샤, 도큐 에이전시 | |
1977년 | 초전자기 머신 볼테스 V | 제작: TV 아사히, 토에이, 토에이 에이전시, 공동 제작: 토호쿠 신샤 |
무적초인 점보트 3 | ||
1978년 | 마법소녀 치클 | 제작: TV 아사히, 토에이, 다이코, 공동 제작: 네오 미디어 프로덕션, 카제 프로덕션 |
투장 다이모스 | 제작: TV 아사히, 토에이, 토에이 에이전시, 공동 제작: 토호쿠 신샤 | |
무적강인 다이탄 3 | ||
1979년 | 사이보그 009 (제2작) | 제작: TV 아사히, 토에이 |
미래 로봇 달타니어스 | 제작: 도쿄 12 채널, 토에이, 토에이 에이전시 | |
더☆울트라맨 | 제작: 츠부라야 프로덕션, TBS | |
기동전사 건담 | 건담 시리즈 | |
과학 모험대 탄서 5 |
시작 연도 | 제목 | 비고 |
---|---|---|
1980년 | 무적 로봇 트라이더 G7 | |
전설거신 이데온 | ||
1981년 | 최강 로봇 다이오쟈 | |
태양의 송곳니 다그람 | ||
1982년 | 전투 메카 자붕글 | |
1983년 | 성전사 던바인 | |
장갑기병 보톰즈 | ||
은하표류 바이팜 | ||
1984년 | 중전기 엘가임 | |
거신 고르그 | ||
기갑계 가리안 | ||
초력 로봇 갈라트 | ||
1985년 | 기동전사 Z 건담 | 건담 시리즈 |
더티 페어 | ||
푸른 유성 SPT 레이즈너 | ||
1986년 | 기동전사 건담 ZZ | 건담 시리즈 |
1987년 | 기갑전기 드래구너 | |
시티헌터 | ||
미스터 아짓코 | ||
1988년 | 시티헌터 2 | |
마신영웅전 와타루 | 마신영웅전 와타루 시리즈 | |
요로이전 사무라이 트루퍼 | ||
1989년 | 수신 라이거 | |
마동왕 그랑조트 | ||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 제작:반다이, 토호쿠신샤 | |
시티헌터 3 |
3. 2. OVA
선라이즈는 OVA(Original Video Animation) 작품을 많이 제작했다. OVA는 텔레비전 방송을 거치지 않고 비디오, DVD, 블루레이 등의 매체로 바로 출시되는 애니메이션을 뜻한다.발매 연도 | 제목 | 비고 |
---|---|---|
1985년 | 더티 페어의 대승부 노란디아의 수수께끼 | |
1987년 | 더티 페어 러블리 엔젤을 사랑을 담아 | |
1987년-1988년 | 더티 페어 | |
1989년 | 기동전사 건담 0080 주머니 속의 전쟁 | |
1990년 | 더티 페어: 음모의 005편 | |
1991년-1992년 | 기동전사 건담 0083 스타더스트 메모리 | |
1994년 | 더티 페어 FLASH | |
1995년 | 더티 페어 FLASH2 | |
1995년-1996년 | 더티 페어 FLASH3 | |
1996년-1999년 | 기동전사 건담 제08MS 소대 | |
1997년 | 신기동전기 건담 W 엔드리스 왈츠 | |
2004년 | 기동전사 건담 MS IGLOO 1년 전쟁 비록 | |
2006년-2008년 | FREEDOM | |
2010년-2014년 | 기동전사 건담 UC | |
그 외 | 린의 날개 |
3. 3. 극장판 애니메이션
1987년 6월, 주식회사 선라이즈로 상호를 변경하면서 기존의 오리지널 기획 위주에서 벗어나 『바츠&테리』 등의 만화 원작이 있는 작품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이 시기는 리얼 로봇 붐이 쇠퇴하던 시기였고, 선라이즈도 『기갑전기 드래고나』를 마지막으로 리얼 로봇 계열 작품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났다.
1990년대 전반에는 『용자 시리즈』가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등 오리지널 작품도 꾸준히 인기를 얻었다. 1994년 4월 1일, 반다이의 자본 참여를 받아 반다이 그룹의 자회사가 되었다.
4. 한국과의 관계
선라이즈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여러 작품을 통해 한국과 관계를 맺어왔다. 1990년 용자 엑스카이저[55][56][57][58]를 시작으로, 마신영웅전 와타루 2, 태양의 용자 파이버드, 전설의 용자 다간, 용자특급 마이트가인, 용자경찰 제이데커, 황금용자 골드런, 용자지령 다그온, 용자왕 가오가이가 등 용자 시리즈를 통해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1991년에는 절대무적 라이징오[59], 원기폭발 간바루가[63], 열혈최강 고자우라[65] 등 엘드란 시리즈도 제작하였다. 이 외에도 기갑경찰 메탈잭, 엄마는 초등학교 4학년[61], 기동전사 V 건담[66], 기동무투전 G 건담, 신기동전기 건담 W, 기동신세기 건담 X, ∀건담 등 다양한 건담 시리즈 작품들을 선보였다.
2000년대에는 무한의 리바이어스[89], THE 빅 오[91] 등의 작품을 제작했다.
이후의 내용은 하위 문단을 참고하면 된다.
4. 1. 협력 제작
AICBusan DR
브리지